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카타가하라 전투 (문단 편집) == 기타 == 전국 시대의 전투 중에 드물게 양쪽의 진법이 상세히 기록되고 그 충돌로 결과가 나온 전투라 주목할 만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양측 다 비상식적인 점이 많아 의문을 남긴 전투이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배후를 잡힌 다케다 군이 수비 진형을 취하지 않고 순식간에 반전해서 가장 공세적인 어린진[* 중국에서 손빈이 말한 추행진(錐行陣)이나 중국 진법 체계의 기본이 되는 손무자팔진의 모진(牡陣)과 같은 중앙이 예리한 삼각형 형태의 돌격에 특화된 진법이다.]을 친 것도 의문이지만, 배후를 잡은 도쿠가와 군이 적은 병력에 기동력을 살릴 수 있는 진법 대신 포위 섬멸을 목적으로 하는 학익진으로 공세를 취한 것도 의문을 남기고 있다. 굳이 전쟁사나 전략·전술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관점에서 봐도 상식적으로 양측이 취한 진법은 서로 정반대가 되었어야 타당하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존재하는데 현재까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무가사회의 특성상 여러 가지 원인이 존재하는데, 몇 가지 원인이 지적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겐이 하마마츠 성의 도쿠가와를 '''쿨하게 무시하고''' 그 앞을 마치 보란 듯이 지나갔기 때문인데, 여기에 대해 명예를 중시하는 사무라이인 도쿠가와가 감정적 분노를 참지 못했다고도 하고, 지나가게 내버려두면 부하 무장들에게 겁쟁이로 무시당해 이탈자가 나올 것을 두려워해 마지 못해 출전했다고도 한다. 어느 것이 됐든 전술적인 계산 없이 무턱대고 출진한데다, 평지인 미카타가하라에서 본래는 우월한 병력으로 적을 포위하는 데나 적합한 학익진을 '''적은 병력으로''' 하필 돌격력이 뛰어난 다케다의 종심 깊은 어린진 앞에 펼치는 엉터리 전술을 펼친 것은 분명한 실책이다. 아무튼 일각에서는 이러한 다케다 군의 공세 지향적인 전술을 통한 승리 덕에 [[나가시노 전투]]에서도 철포대와 방책이 있는 오다-도쿠가와 군의 진지에 달려들었다 몰살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는 듯. --신겐: 아들아! 전에는 우리가 더 병력 많았다고!-- 444년 뒤인 2017년에 [[포위섬멸진]]이라는 무리수가 등장해서 웃음거리가 됐는데, 어찌 보면 이게 그 원형인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